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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04. 26. / 경향신문 ] 불합리한 세상과 '맞장' 뜬 시각장애 변호사 "존재를 변호할 것"
작성자 청주함어울CIL
날짜 2023-05-02 09:38:25

2023년 제1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시각장애인 김진영씨가 26일 인천에 있는 자택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picture>

2023년 제1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시각장애인 김진영씨가 26일 인천에 있는 자택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이게 되는구나’ 싶었죠. 너무 힘들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제12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발표날인 지난 21일, 김진영씨(30)는 아침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발표를 6시간도 넘게 앞둔 때였다. 두근거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침대, 컴퓨터 앞을 수십번 오갔다. 오후 5시20분. 카톡 알림이 울렸다. “내가 아는 사람은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 다 확인했다.” 스터디원의 연락이었다.

김씨의 이름이 컴퓨터에서 음성으로 나오기까지 채 몇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김씨는 대여섯번 더 들으며 수험번호를 확인했다. 그제서야 ‘설마’가 ‘확신’으로 바뀌었다. 2021년 시작한 김씨의 변호사시험 분투기가 마침내 끝난 것이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책 구하기’부터 일이었죠”

김씨는 시각장애인이다. 한쪽 눈은 원래 시력이 없었고, 다른 쪽은 잔존시력이 0.2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다 김씨는 11살쯤 ‘기이한 경험’을 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우스가 보이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망막박리로 김씨는 약 일주일만에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 후로 김씨의 삶의 폭은 눈에 띄게 좁아졌다. 전학 간 특수학교에선 “특수교사, 안마사, 음악, 사회복지사 중에서 뭘 할거냐”는 질문을 수시로 들었다. 나중엔 ‘음악’을 상당히 강조했다. “학교에선 일반과목보다는 음악을 주로 가르쳤어요. 공부 쪽으론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죠. 학교에서는 음악이 중요하다 하고, 저는 공부하겠다고 하고, 그림이 이상했죠.”

공부는 쉽지 않았다. 책을 구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김씨는 “일반 책을 볼 수 없으니 교재 원본 텍스트 파일을 받아야 하는데, 이걸 제공해주는 저자를 찾기 어렵다. 저자 연락처를 구하는 것부터가 일”이라고 했다.

2018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도, 변호사시험을 준비할 때도 교재 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다. “법서는 한자가 많고, 음영이나 밑줄도 많아서 OCR(광학문자인식)을 해도 문자가 깨지거나 인식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양도 많아서 봉사자들한테 타이핑 쳐달라고 맡기기도 어렵죠. 1000페이지나 2000페이지짜리 책이 기본이니까 한 권이 완성되는데 3개월, 길면 1년도 걸려요. 필요한 책은 많은데, 한 권 만들어놨다 싶으면 해가 지나면 판례도 바뀌고 법도 바뀌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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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제1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시각장애인 김진영씨가 26일 인천에 있는 자택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 서성일 선임기자

외줄타기 인생이 만들어낸 싸움닭

외줄타기 인생은 싸움닭을 만들어냈다. 법무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변호사시험 기출문제를 제공하는데, 이 중 일부를 이미지 파일로만 제공해 김씨와 법무부의 다툼이 시작됐다. 김씨는 “노트북에 있는 음성프로그램으로 한글파일을 열면 프로그램이 내용을 읽어주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데, 이미지 파일은 인식이 안 돼서 법무부 측에 파일을 달라고 했더니 해괴망측한 핑계를 댔다”고 했다. 처음엔 “원본파일을 삭제해서 없다”고 하더니 나중엔 “비장애인에겐 안 주고 장애인만 줄 수 있냐,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씨가 “비장애인들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이미지 파일을 보면 되지 않냐”고 하니 “선례가 없는 일이다. 법률에 근거해서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씨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끝에 장애인이 요청하면 법무부가 기출문제 한글파일을 제공하는 것으로 다툼은 일단락됐다.

‘법무부와 다툴 때 어떤 감정이 들더냐’고 물었다. 김씨는 “처음엔 말이 안 되는 말을 하니까 화가 났는데, 사실 그런 얘기는 법무부만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예를 들어 대학에 다닐 때 강의실이 지체장애인 학생이 못 가는 건물에 있어 변경해달라고 했더니 비장애인 학생들이 “다음 수업과 거리가 멀어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더라는 것이다. 김씨는 “그걸 주장하는 학생은 너무 진지하다. 법무부도 되게 엄숙하고 진지했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비단 법무부뿐만이 아니라 장애인에게 불친절한 세상 전체와 싸워왔다는 뜻이겠다.

시험을 치르는 과정도, 치르고 난 후의 과정도 김씨에겐 쉽지 않았다. 김씨는 시험 첫째 날 법무부가 제공한 노트북이 10번 넘게 꺼져서 시험을 오전 9시부터 밤 11시까지 쳐야 했다. 김씨는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서 “비장애인 응시자라면 시험을 치다가 갑자기 옆에서 답안지를 몇 번 찢는거나 마찬가지인데, 컴퓨터가 꺼진다고 하니 감이 안 와서 그렇지 무척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본인이 작성한 답안지와 제출된 답안지가 다른 황당한 상황도 발생했다. 시각장애인 응시자는 컴퓨터로 답안지를 쓰고, 법무부 직원이 이걸 옮겨적는데 그 과정에서 내용이 바뀌거나 빠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랬다”면서 “올해는 지인을 데리고 가서 A4 60장짜리 답안을 다 읽고 확인했는데, 법무부가 확인시간을 한시간 반으로 제한해서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 사람 위해 돌멩이 하나 치우는 느낌’으로 견뎌왔다”

김씨는 “벼랑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 왔다. 김씨는 “공부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제가 가는 길이 처음 가는 길인 것처럼 닦여져 있지 않다는 거였다”면서 “나라도 돌멩이 하나 치우는 느낌으로 싸우면 다음 사람이 편할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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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가 된 김씨는 이제 다른 싸움을 준비 중이다. 다음달부터 재단법인 동천에서 근무하는 그는 종각역부터 회사 입구까지 유도블럭을 설치해달라고 종로구청에 신청해뒀다고 했다. “앞으로는 침해상황이 발생하는 최전선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도 듣고 대응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존재를 변호하는 변호사’로 만나뵙겠습니다.” 김씨가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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